게시물 77건
   
내면적 신비의 깊이(엄두섭목사)
글쓴이 : 위니스… 날짜 : 2011-01-24 (월) 09:05 조회 : 2320
1.  인간의 마음은 빙산과 같다. .

빙산은 12분의 1만이 물 밖으로 드러나 있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바다 밑에 잠겨있다.

그 보이는 부분이 사람의 현재의식에 해당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잠재의식에 해당한다.

즉, 잠재의식이 인간 전체의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잠재의식이 곧 진정한 마음의 주체이다.

사람의 내면세계에는 무한한 영지(英智)가 실재하고
잠재의식 밑에는 무의식의 바닥과 하늘로 통하는 채널이 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는 말하기를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심소(心素)가 있고
그 정상에 신적 불꽃이 있어
이것으로 하나님의 세계와 사귐을 갖는다”고 했다.

잠재의식에는 큰 창조력이 있고 초월, 절대,
신비한 존재를 포함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대 기성종교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형식주의,
외식주의는 종교 말로(末路)의 타락상이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개신교의 부흥이란 것은
교회의 외부적 성장에 지나지 않는다.

고무풍선 속에 바람을 불어넣은 듯
한국교회 내면은 텅텅 빈 공허에 지나지 않는다.



2.  내면적 탐구

로마서 2장 28-29절에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는 할례가 아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하다’고 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내면적 탐구를 해야 한다.

모든 외면적, 형식적 운동은 지양하고 영맥(靈脈)을 파고
심층종교가 돼야 한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을 안에 있다고 보지 않고
모든 수단을 이용해 밖에서 끄집어 오는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믿음의 선진 이세종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추 파면 너는 망한다.
깊이 파고 깊이 깨닫고 깊이 믿으라.”

한국교인은 외부적, 형식적 예배 교인이 아니라
내면적 깊이를 가진 종교인이 돼야 한다.

내면의 깊이가 없으면 기독교는 앞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인생아, 너는 나를 어디서 찾으려는가.
나는 영산에도 성지에도 있지 않노라.
나는 이슬람 사원에도 성당에도 있지 않노라.
나는 네 곁에, 네 걸음 속에, 네 숨결 속에,
네 안에 아니 나는 네 한가운데 있노라.” - 까비루



3.  신비주의

음률이 없는 시는 산문에 지나지 않으며,
신비가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종교계에 합리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는
지나가 앞으로는 신비주의가 인간 사상
전역에 새롭게 등장 할 것이다.

신비경험은 종교의 밑바탕이다.

월리엄 로우는
“내면 지성소에서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고난, 부활, 승천이 우리 심령의
진상(眞相)으로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가 내적 예배를 연단 한다면
우리는 시공을 초월해 하나님 안에 늘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황홀경뿐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체험하려면 자기 감각을
버릴 뿐만 아니라 자기 이성도 버려야 한다.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신앙의 최고 상태는 황홀경이다”라고 말한다.



4.  관상기도

관상기도는 조용한 내적 기도다.

영어로 ‘infused contemplation'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의식 속에는 초월, 절대,
신성한 존재를 포함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존재에 접촉하는 방법은 오감을 초월해야 하고
피조 세계의 온갖 미묘한 상을 통과하여
그 내오(內奧)의 깊은 밑바닥에 있는
초월존재의 영역에까지 도달해야 한다.

주부적(注賦的) 관상기도는 모든 기도의 극치다.

주부적 관상기도는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받는다.

주님이 기도하시고 성령이 기도하신다(롬8:26).

주부적 관상기도에는 청원이 없다.

‘구하기 전에 너희 쓸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신다’ 했으니
믿음으로 맡긴다.

주부적 관상기도는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머리 속에 추리작용도 하지 않는다.

다만 느낌 뿐이다.

그 느낌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현존의 느낌이다.

이 느낌이 간절하여 거기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감정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한 애정이다.

“오! 사랑하는 예수님”하고 부를 뿐이다.

그래서 이 기도를
‘직관적 기도’ 혹은 ‘애정의 기도’라고도 부른다.

애인이 애인의 품에 안겼을 때 말이 없으나
느낌은 강렬한 것과 같다.

우리 모두 내면적 신비의 깊이를 사모하자. 

위니스… 님의 영성의길 최신글 [더보기]


   

 
cbs cts 순복음방송 godpia.com cgntv pckworld 크리스천헤럴드 czone
Copyright ⓒ www.hellochristian.ca. All rights reserved. 헬로우 크리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