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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영적 위치와 단계들 (정원목사)
글쓴이 : 위니스… 날짜 : 2011-02-23 (수) 04:23 조회 : 2286
나는 여기서 간단하게 교회의 영적 수준이나 상태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려고 합
니다. 물론 이것은 이해를 위하여 일반적인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여
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상태와 같이 교회도 각 교회마다 영적인 수준과 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을 애굽의 단계에 있는 교회, 광야의 단계에 있는 교회, 가나안의 단계에 있
는 교회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세한 구분을 하려면 아마 한 권의 책이 필요하겠지
요. 다만 간단하게 언급을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애굽 수준의 교회.. 이것은 영혼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보지 못하는 수준의 교회입니
다. 여기에 속한 이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을 압도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것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상태가 영적 발전단계의 초기에 있다는 것입
니다. 사회 운동을 많이 하는 교회가 여기에 속합니다. 그들은 사회의 이슈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인 복이나 형통에 대한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 상태가 애굽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보통의 교회들도 이러한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본능에 속한 여러 욕망들, 문제
들을 해결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고 가족들의 문제들에 사로잡혀 있으며 윤리 도덕 차
원의 믿음 생활을 하고 있으며 아직 영혼의 깨어남이라든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인
식이 없는 상태의 교회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고 가끔
전도도 하지만 아직 영적인 깨우침이 없고 진리의 빛 가운데서의 자유함도 별로 알지 못하
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그들보다 도덕적이나 삶에 있어서 별로 나아보
이지 않는 그러한 모습을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들은 애굽의 전반기에 속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하게 나누려면
애굽의 단계도 광야의 단계도 특징적으로 많이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간단하
게 두 가지로 나누기로 합니다. 애굽의 전반기에 속하는 교회들은 삶 속에서 많은 고통과
눌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성장을 위한 훈련 차원의 고난이 아니고 그들이 영적
권세와 힘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눌려있는 것입니다. 훈련과 고난은 광야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아직 이들은 그러한 단계에 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로에게 눌려 있으며 악한
영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그들은 예수 이름의 능력과 보혈의 힘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 전쟁 중에 있다는 사실도 개념적으로 이해할 뿐 그 실상에 대해서
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는 그들의 눈이 현실과 환경과 육체에 고정되어 있어서 영혼의 세
계를 보고 알지 못하고 있으며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영혼
이나 영성에 대한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영혼이나 영성이나 영계는 실
제적인 영계가 아니라 현실의 투영에 불과합니다. 가장 많은 성도들이 이 단계에 있기 때문
에 역시 이 단계에 속하는 교회들이 가장 많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주님과의 친밀한 만남이
나 죄에서의 해방, 성질에서의 해방 등은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아주 급한 상황에서 어
쩌다 한번 응답을 받거나 하는 편이지요. 평범하게 주님과 같이 동행하고 삶을 나누고.. 그
러한 것은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그들은 아직 영적인 실제에 대하여 너무나 먼 곳에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의 단계.. 애굽의 후반기에 있는 교회는 은사적인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서는 기적
과 능력이나 표적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다른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이 교회에서는 더 특별
하게 자신들의 교회가 가장 영적이고 수준이 높은 교회라는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를 떠나면 죽을 것 같이 말하는 교회도 이러한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은사 체험도 하고 입신도 하고 예언은 아예 달고 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곳이 아주 특
별한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이곳의 상태는 애굽의 전반기보다는 낫습니다. 능력과 은사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은 어
느 정도 악한 영들에 대해서 알며 전쟁에 대해서도 알고 어느 정도의 풀림과 자유를 경험합
니다. 그러나 아직 이들은 더 많은 묶임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작은 전쟁에서
는 승리하지만 그 결과 더 큰 묶임을 가지게 됩니다. 즉 애굽에서의 승리는 온전한 승리가
아닌 것입니다. 이들은 아직 영혼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육체의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이들은 귀신에 대하여 민감하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함부로 가지 못하고
아무나 함부로 만나지 못합니다. 예언을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그 예언의 내용에 대하여
항상 묶여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평범하게 사는 이들보다 훨씬 더 비참한 상태에 있는 데
이들은 그러한 것들을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경배와 찬양을 많이 드리고 기름부음집회라든지 능력 사역을 많이 하는 곳들이 이
러한 상태에 있습니다. 아직 영혼은 열리지 않았지만 몸에는 여러 느낌과 감동들이 나타나
기 때문에 여기에는 어느 정도 기쁨과 자유함이 있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의 승리
의 영이 임하고 있기 때문에 물권이라든지 질병의 치유라든지 인간관계의 묶임에서 승리하
게 된다든지 하는 등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후반기에 기적과 능력
을 통해서 바로와 그 군대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지요. 일시적인 승리일 뿐입니다. 조금 후에 좀 더 영이 자라서 광야에 가게 되면 자기
속의 성질이 다 나타나며 주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이것은 영성의 프로그램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아직 이 단계에서는 영혼의 자유를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의 해방과
의지의 자유를 맛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단계가 필요한 사람들이 처음에 이러한 패턴의 교회나 예배를 경험하게 되면 그들은
많은 충격과 도움을 얻게 되지만 그들의 영혼이 어느 정도 자라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될 상황이 되었을 때는 그러한 외적인 강함이나 열정이 허무하고 피곤하게 느껴지고 좀 더
내적인 것들을 구하게 되어 이러한 패턴의 신앙에 대해서 많은 묶임과 고통을 느끼게 됩니
다.


세번째 계통의 교회는 제자 훈련 계통의 교회입니다. 광야의 초기에 도달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헌신도나 성품이나 은사적인 교회들 보다는 조금 격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부드럽고 잔잔하며 주님을 알아가기 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영적인 전쟁
이 무엇인지 모르고 영적 실제를 모르기 때문에 눌려 있고 침체되고 답답합니다. 제자 훈련
계통의 교회의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들은 애굽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단계
는 유치하지만 기본적인 것입니다. 압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살아있음을 체험해야
합니다. 바로의 군사들을 다 홍해에 장사시킨 후에 광야의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단계를 생략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삶에 있어서 많은 묶임과 눌림과 고통이 있
습니다.


광야의 전반기에는 승리와 감격이 있습니다. 많은 결신자들을 얻고 의지적으로 주님을 믿
고 말씀을 묵상하며 어느 정도 열매를 얻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후반기가 되면 말할 수 없
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사는 것이 지옥일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
로 가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이 광야 후반기 교회의 모습입니다. 물론 광야에도 한
두가지의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 하나씩 영혼의 눈이 떠 가기 까지 물질 훈련, 사
람훈련, 위기 훈련, 죽음의 훈련, 낙담과 포기의 훈련등이 수 없이 이어집니다. 항상 하나의
전반기에는 승리가 있고 후반기에는 포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광야의 특징입니다.


가나안에 속한 교회는 이제 어느 정도 영혼이 눈을 뜨고 주님의 모든 것 되심을 알게 되
는 교회입니다. 사실 그 이전의 사람에게는 주님의 우주의 중심되심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공상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영혼이 기능이 어느 정도 깨어나
야 가능한 것이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전반기에서는 비로소 주
님과의 연합이 삶의 목적이며 그리스도인의 길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합에 힘을
씁니다. 가나안의 훈련은 단순합니다. 모든 전쟁, 삶의 문제들을 위해서 오직 주님과의 연합
의 관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애굽에 있을 때는 아직 권능의 단계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직 권능을 받아
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이 단계의 사람들은 대부분 담대함과 권능을 받게
됩니다. 광야에서는 대체로 주님의 임재 속에서 낮아짐과 굴복, 진리의 계시가 이루어집니
다. 가나안에서는 어느 정도 영혼이 눈을 뜨기 시작하며 그것은 머리 중심의 개념적인 신앙
과 은사 중심의 체험적인 신앙과 분명히 다른 어떤 실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서는 실제적인 주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지는데 그 분량만큼 죄에서의 해
방이 있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이 실제적으로 천국의 영계에 거하고 교통하기 때문입
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전반기에서는 실제적인 주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
직 소원과 이론과 개념뿐입니다. 그리고 전반기에서 소원은 있으나 연합의 실상은 없어서
심하게 고통하게 되고 그 고통과 간절함의 분량이 충분히 차게 될 때에 서서히 가나안의 후
반기 단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대충 여기까지 이야기하게 되면 현실의 세계에서 가나안의 후반기 단계에 이르는 교회는
이 땅에 거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 애굽이나 광야에 있는 것이지요. 그러
므로 삶에서 누림이 없고 천국의 영광에 대해서 주님의 영광의 실제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
심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싶은 것은 어느 교회가 옳고 어느 교회가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는 다 사명이 있으며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
다. 이것은 모든 유치원은 악한 것이며 대학만이 좋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틀린 것과 같
습니다.

성도들은 자기의 영적 발전단계에 맞는 교회에 있을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만
약 성도들이 어느 정도 영이 자라게 되면 전에는 이 교회가 참 좋았는데 지금은 만족이 되
지 않는.. 그러한 현상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나는 자신의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영적이라고
말하는 교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대체로 은사가 나타나거나 표적이 임하는 교회들이 그러
한 생각에 많이 잡혀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은 그들이 아직 너무 어린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묶임입니다. 성도들을 묶으며 또한 자신들을 묶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의 마을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의 중심에 목회자가 살고 그 주위에 그
목회자와 영적 발전상태의 단계가 비슷한 성도들이 같이 모여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적 수준이나 단계가 비슷하면 그들은 서로 기쁨을 느끼며 보고 싶어합니다. 마치 가족이
나 형제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영원한 곳에서도 같이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
회자의 영적 발전 상태와 성도들이 서로 맞지 않으면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사역자보다 영
이 너무 높거나 낮은 상태에 있으면 서로 간에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보통 이러한 경우에 서로 상처를 많이 주고 받고 떠나가게 되는 데 이것은 배반이나 마귀
의 역사라기 보다는 인생의 한 과정입니다. 즉 자녀가 장성하여 결혼을 하는 것이 부모를
배반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런 것일 것
입니다. 그럼 가나안의 교회는 어디야? 하하하.

하지만 저도 모릅니다. 다만 영적 발전상태가 깊어질수록 교회와 사역자와 성도들은 모든
것보다도 오직 주님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우주와 천국의 질서를 유
지하는 핵심의 진리이며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있어도 유명하지 않으며 사람
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리 많이 모이지 않으며 아름다운 건물도 없으
며 목회자도 그리 잘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한 교회가 있으면 유명해질리가 없으니
기독교 티브이 앞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별로 가능성이 많지 않을 것입
니다. 이 땅에서 교회에서 주님은 감추어진 분이시니까요.

그러한 교회는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그리 매력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준비가 되고 영혼이
어느 정도 눈을 뜬 이들은 주님 자신을 알고 싶어하며 그러한 메시지에 굶주려 있지만 그러
한 이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환경과 가족과
현실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으며 진정한 영혼의 해방이 무엇인지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나안의 교회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의 상태에 있는 성도들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도 오직 교회 건물의 크기나 외적인 명성으로 교회와
사역을 평가합니다. 그들은 내면의 눈이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깊
은 내적인 만족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주님은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자신을 보여주
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가나안에 속하고 그 상태에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
은 것입니다. 다만 나는 그러한 상태의 교회들이 이 땅에 많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합니다. 성도들이 진정 주님을 그리워하고 그분을 높이며 그의 임재를 추구하고 사모하는
교회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그러한 사역자들이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교회는 사역자의 수준
보다 더 깊어질 수가 없으니까요. 또한 그러한 사역자들을 돕는 성도들도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러한 교회들이 세워지고 발전해질 테니까요.

가나안에 속한 교회는 자유로운 교회입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어린아이같은 교회입
니다. 거기서는 아무도 잘난 척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서는 아무도 남들을 위협하거나 압
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는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초월적인 평화와 기쁨이 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목사나 성도나 주님을 부르고 주님이 그리워서 울며 서로 보고 싶어하고
이 땅에서 유명해지고 출세하는 삶을 원하지 않으며 많은 묶임과 욕망에서 벗어나 그저 주
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주님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포근하고 주님의 따뜻하고 친밀한 임재로 가득한 교회. 그러한 교회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 까요. 그러면 저도 교회를 좀 추천해달라는 부탁에 시달리지도 않게
될테니까요. 이 땅에 가나안에 속한 주님께 속한 그러한 교회가 많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십
시다. 그것은 곧 천국의 임함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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