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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켄지 선교사는 왜 그렇게 죽어갔을까
글쓴이 : 헬로크… 날짜 : 2015-02-06 (금) 04:13 조회 : 794

[[제1219호]  2010년 3월  6일]

1893년 모진 엄동설한의 12월, 제물포 항구에 한 낯선 캐나다인이 상륙하였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않은, 32살 비교적 많은 나이의 윌리암 맥켄지 미국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었다. 교육적 배경도 보잘 것 없었다. 캐나다에서도 동부 저 멀리 라브라도라는 시골에서 개척 전도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국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떠났는데, 그의 수중에는 친구들이 모아준 쌈짓돈이 전부였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그는 서울에서 몇 달 지내고 다음 해 2월초 솔내로 내려갔다.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한국사람들과 살다가 마지막 천국 나팔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들과 떨어지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간 길이었다.

거기서 그는 초라한 초가집 하나를 얻고 한복을 입고 살았다. 쌀로 밥을 지어 먹었고, 반찬은 소금국에 짠지와 조밥이 전부였다. 한국사람이 된 것이다. 다들 그를 형제처럼 알고 가까이 지냈다. 그때 서상륜도 만나고 서경조 집안 사람들도 만났다.

그러던 그에게 언더우드 부인이 크리스마스 며칠 전, 인편에 커피와 설탕, 그리고 과자를 한 상자 보내왔다. 그것을 받은 멕켄지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지난 세월간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입에 익숙한 음식들, 그렇게 먹고 싶던 설탕…….

그러나 그는 그것을 손으로 덮었다. 과자 봉투도 뜯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동네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오래 참아 이제 겨우 한국식 음식에 익숙해졌는데, 이것을 먹으면 그동안 노력한 것이 수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맥켄지는 동학란을 겪은 뒤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계속 몸이 쇠약해져 갔다. 견디기 힘든 고독과 빈약한 먹을거리, 약을 얻어 쓸 수 없는 열병 등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선한 의지를 꺾고, 그의 몸을 쳤다.

그는 1895년 5월 아픈 몸을 끌고 서울에 잠시 들렀다. 한 20일 동안 선교사들도 만나고 영국공사도 만났다. 죽기 전에 친구들을 보고 싶었다.

솔내에 돌아온 맥켄지는 계속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일어날 수가 없게 됐다. 그는 한국식으로 살아서 죽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1895년 6월 23일, 낯선 땅 외진 곳 솔내 초가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힘을 다해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글이 몇 번씩 끊기고 흩어지고 멈추었다. “어머니!” 그 말이 처음과 마지막에 몇 번씩 가슴 메이게 반복되었다.

“예수님이 내 유일한 소망입니다. 어머니,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어머니.” 그리고는 떠났다. 솔내에 온지 1년 4개월 만의 일이었다.

한국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데 뭐가 더 필요했을까. 그가 그 거친 뜰에 드높이 꽂았던 십자가의 깃발은 아직도 저렇게 높이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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